![[현대건설] 21세기 오피스 빌딩의 자격-전경련 회관](https://blogddong.com/wp-content/uploads/2026/06/naver_87321d5575c7.jpg)
DISCOVER [현대건설] 21세기 오피스 빌딩의 자격-전경련 회관 HMG저널 2018. 10. 5. 13:20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본문 폰트 크기 조정 본문 폰트 크기 작게 보기 본문 폰트 크기 크게 보기 가 공유하기 URL복사 신고하기 지하철 9호선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여의도란 커다란 위협입니다. 수트를 차려입은 엘리트 회사원들이 좁은 지하철 안을 물소 떼처럼 쓸고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 저돌적인 힘은 증권가 엘리트들 사이에서 한껏 고양된 경쟁심과 촌각을 다투는 가운데 생존해야 한다는 치열함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일개 소시민들은 검은 파도에 치이는 와중에 하루치의 에너지를 전부 소진해 버립니다. 출퇴근 시간에 9호선을 이용할 생각이라면 당분 보충용 초코바를 하나 준비하고, 비싼 옷이나 신발은 가급적 걸치지 마시라는 생활의 팁을 건네봅니다. 이와는 반대로, 당산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환승한 뒤 당산철교를 건너며 감상하는 여의도는 언제 그리 각박했냐는 듯, ‘도시 속의 섬’이라는 특별한 낭만으로 다가옵니다. 봄에는 벚꽃이 그득하고, 가을에는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국회의사당의 거대한 돔 지붕, 툭툭 면을 쳐내서 박력있는 IFC 타워, 옹기종기 정박한 요트들은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특히, 지하철이 선로를 따라 달리는 와중에 쌍둥이 빌딩 틈으로 63빌딩이 채워지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개기일식의 우연에 비하면 초라한 스케일이더라도, 남산타워에 반사된 햇빛이 누군가의 창문을 두드리는 만큼의 인사면 충분합니다. 여의도의 또 다른 특별함은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어왔고, 여전히 변화의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여의도 공원은 일제가 만든 비행장의 흔적입니다. 60년대 말, 여의도에 붙어있던 밤섬을 폭파시켜 그 골재로 제방을 둘렀고, 그러한 와중에 방죽을 뜻하는 일본어(輪中堤:와주테이)의 잔재가 윤중제, 윤중로, 윤중초등학교 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불과 30대에 그린 여의도개발 청사진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다시 다뤄지면서, 50년의 세월에 아랑곳 않고 지금 여기를 논하는 근거로 살아 있습니다. 무려 8년만에 공사가 재개된 파크원 빌딩이 2020년에 73층 높이로 완공되면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그럼에도 85년에 지은 63빌딩은 여전히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현역이네요. 그러한 와중에 또 하나의 빌딩이 눈에 띕니다. 바로 5년 전에 준공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관입니다. 작년에 ‘한국기업연합회’로 개명했으나 여전히 전경련이라는 호칭이 지배적입니다. 한강 다리 위에서 본 바로는 그리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어서 사실 무슨 건물인지 잘 몰랐습니다. IFC보다는 키가 작고, 애써 기교를 부리지 않은 정직한 형태였기 때문에 그냥 원래부터 있던 건물인가 싶었습니다. 어느 하나 노고를 들이지 않은 건물은 없다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도심 오피스 빌딩에는 무덤덤한 편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높이에 열광하지 않으며(물론 자신이 건물주라면 최대한 ‘높이높이’ 를 외치겠죠), 중력에 묶인 고층 빌딩의 특성상 형태적인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합니다. 모든 층에 있어야 할 엘리베이터, 피난계단, 화장실, 설비 공간을 한 데 묶어 중심부에 위치시키며, 이들이 척추 역할을 하면서 대부분의 하중을 버텨줍니다. 그래서 20층이나 40층이나 평면상의 변화는 극히 적습니다. 최대한 동일한 바닥이 아래에서 위로 반복되어야 그 커다란 건물을 무리하지 않고 올릴 수 있으니까요(또한 모든 층의 도면을 그려야 하는 막노동도 줄어듭니다). 뉴욕 시그램 빌딩의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도시 풍경을 얘기하는 데 빠지지 않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 로에입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미스 반 데 로에는 오피스와 같은 수직 타워의 모범을 제시했습니다. 평소에도 반듯한 옷차림에 말수가 적었던 미스 반 데 로에는 자신의 성격을 투사한 듯 묵직하며, 정교한 건축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뉴욕의 시그램 빌딩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인 건축물이 갖는 비례와 형식을 현대적으로 번안한 덕에 여전히 시대를 뛰어 넘는 아우라가 감돕니다. 물론 황동과 대리석처럼 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썼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우리가 시그램 빌딩을 보면서 느끼는 숭고와 울림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초반에 등장하는 매끈한 검은 돌(monolith)처럼, 근본적으로 인류가 지향하는 인공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형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나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태가 속상한 누군가께서는 그 원망을 위의 두 분에게 돌려도 무방하겠습니다. 멀리서 전경련 회관을 봤을 때는 미스 반 데 로에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른 유산(legacy)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완전한 오해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주름입니다. 건물을 둘러싼 마감, 즉, 외피는 아코디언처럼 잔뜩 주름진 형식입니다. 주름이 진다는 것은 표면적이 증가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경우 내부에 빈 공간을 만들며 표면적을 늘렸는데, 이는 이용자들간의 관계 증진을 위해서였습니다. 전경련 회관이 긴밀하게 관계 맺고 싶은 것은 누구일까요? 바로 태양입니다. 유리로 감싼 외피는 투명하고 시원시원해 보이지만, 한낮의 강렬한 햇빛으로 일하는 직원들은 괴롭기 마련입니다. 창이 15도 경사를 갖고 바깥으로 기울어진 결과, 실내로 들어오는 빛은 확연히 줄었습니다. 창들이 기울어진 탓에 윗층과 아랫층의 창을 이어주는 부분(이러한 수평 부분을 스팬드럴이라 하고, 바닥 위치와 동일합니다)은 30도 경사를 이루며 돌출되었습니다. 전경련 회관에서 이 부분은 처마 역할을 하며 창 가까이에 앉은 사람들이 눈부시지 않도록 해를 가려줍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스팬드럴은 태양광 패널과 결합하여 빌딩 조명에 필요한 전력의 13%를 담당합니다. 3,479개의 패널이 생산하는 전력은 36가구의 연간 소비량이라니 주름 좀 잡을 만하네요. 로비에 들어가는 길은 뒷문이 훨씬 유쾌합니다. 경사진 유리 입면이 만화경처럼 광장아파트를 조각내고, 컨퍼런스를 위해 별도로 세운 포디움의 둥근 자태가 역동적입니다. 쿨링 타워와 출차 램프는 시민을 위해 기증한 디지털도서관 건물에 감쪽같이 통합되어 미관상 보기 싫은 구석이 조금도 없습니다. 높은 녀석, 둥근 녀석, 조그만 녀석, 오래된 녀석들이 와글거리는 가운데 위대한 자연이 이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친환경 오피스로서의 전경련 회관은 에너지 생산, 오수 재활용, 냉난방 설비 등의 인텔리전트한 측면도 뛰어나지만 독립된 생태계(비오톱)를 가꾸고, 시민들에게 개방함으로써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친화적이라는 점 역시 훌륭합니다. 녹지에는 타원형의 수조가 놓이고, 여기에서 부레옥잠과 물고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만 채운 줄 알았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상당한 수로 무리지어 놀랐습니다. 둥근 포디움 주변 또한 물길을 둘렀는데, 이곳은 사람의 접근을 막아 여러 생물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본래는 이 물길이 샛강까지 연결되고자 했다는데, 향후 그러한 방향으로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평일 오후의 여유를 한껏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로비에 들어갔습니다. 녹지를 거쳐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와중에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사소한 특징 때문인데, 그래서 더 뒤쪽에서의 진입이 맘에 들었나봅니다. 현대적인 오피스 타워들은 시그램 빌딩의 열렬한 신봉자입니다. 종로의 삼일빌딩처럼 처음 보는 사람은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멀찍이 떨어져 볼 때와는 달리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행자 레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로비 진입 방식입니다. 시그램 빌딩은 건물 앞의 널따란 광장과 1층 로비의 바닥이 동일한 높이에 있습니다. 즉, 얇은 유리문으로 만든 투명한 경계막이 이곳과 저곳을 가를 뿐, 공공의 영역과 사유지가 어떠한 위계도 갖지 않습니다. 실상 시그램 빌딩에서도 보통의 시민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제지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개념상으로는 정장을 잘 차려입은 맨해튼의 비즈니스맨이나, 아무런 연고도 없이 휴식을 위해 광장을 찾은 사람들이나, 동등한 입장이라는 의도가 중요하달까요. 사람 사이에서도 별 것 아닌 일에 섭섭한 경우가 많습니다. 건물에 들어갈 때에도 한두 단의 턱이 생각보다 큰 심리적 거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전경련 회관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단차가 없는 진입은 모두를 기꺼이 환영하는 태도와도 같습니다.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들어간 로비는 12m로 어마어마한 높이를 갖습니다. 이러한 오피스가 갖는 미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초현실적인 규모의 빈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과, 또 하나는 최상층에서의 환상적인 전망입니다. 그러니까 1층과 꼭대기의 매력이 대부분을 차지한달까요. 전경련 회관은 특히 다른 오피스에 비해 작위적인 부분들이 적어서 훌륭합니다. 한국의 건축물들을 볼 때 아쉬운 점은 빈 공간을 가만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비어있음은 미완성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굳이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무엇인가로 채우려 합니다. 화분을 두거나, 간판을 걸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조잡한 예술품을 가져다 두는 식입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공간을 비운 까닭은 빈 공간으로서 갖는 유용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비어있음이 갖는 미학과 힘이 있습니다. 다행히 전경련 회관은 그 의도를 존중했습니다. 트래버틴 대리석으로 마감한 크림색 벽에는 이렇다 할 방해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분주해도 넉넉한 볼륨에는 여유가 가득합니다. 탄산칼슘이 가라앉아 생긴 줄무늬 패턴과 군데군데 불규칙하게 난 구멍들은 도저히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예술 그 자체입니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는 식당과 옥상 정원으로 직행합니다. 분당 360m 속도로 오르내리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50층 버튼을 누릅니다. 터치식 버튼이라 눌렀다기보다는 톡 가볍게 건드렸다고 하는 편이 옳겠네요. 괜히 시간을 한 번 재봅니다. 스톱워치가 50초 조금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50층은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 누구나 눈치 볼 필요 없이 방문하면 됩니다. 도심이다 보니 창밖의 전망은 남산타워에서 볼 때 보다 서울이 성큼 다가온 듯합니다. 계단을 타고 한 층 더 오르면 옥상 정원이 펼쳐집니다. 단풍나무와 수호초 화분, 계절을 고려한 화초를 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스카이 팜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토마토, 가지, 고추, 상추, 허브 등의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텃밭도 함께입니다. 이곳에서 재배된 채소는 아래층의 식당으로 공급되니 또 하나의 생태계가 건물 꼭대기에 있었던 셈입니다. 옥상 정원인 척 하기 위해 바닥에 녹색 방수제를 칠했던 부끄러운 과거에 비하면 우리 사회가 꽤 나아가긴 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옥상에도 태양광 발전 패널이 설치되었습니다. 옥상은 건물 외피에 비해 면적이 좁기 때문에 패널의 경사를 더욱 촘촘하게 두었습니다. 에너지 생산과 텃밭을 조성하는 일이 쉬워 보여도 실은 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고층 건물들은 폼나는 헬리포트를 갖기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옥상을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보다 높게 지었을 경우, 남한 특유의 사정으로 대공포 진지를 두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최고층 높이는 이웃인 IFC보다 낮추었으며, 화재 발생 시 따로 대피할 수 있는 층을 특별히 마련했다고 합니다. 케이블을 팽팽하게 당겨 그물망을 만들고, 유리를 고정시키는 케이블-넷 월 방식을 사용한 포디움의 정면부입니다. 거대한 테니스 라켓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이밖에도 전경련 회관의 기술적 성취는 다양합니다.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EXID의 노래 ‘위아래’처럼 지하 6층까지 땅을 파내려가는 작업과 50층까지 올라가는 공정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포디움의 둥근 형태를 최대한 매끈하게 완결하기 위해 스페인의 기술력을 빌어 3차원적으로 구부러진 곡면 유리를 제작했습니다. 포디움 정면의 거대한 유리벽은 프레임의 두께를 줄여 최대한 투명하고 시원한 느낌을 전하기 위해 케이블-넷 월(cable-net wall) 방식을 적용하였습니다. 이는 팽팽하게 당긴 케이블로 그물망을 만들고 유리를 고정시키는 기법입니다. 이를테면, 거대한 테니스 라켓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 모든 기술 실현이 국내 최초였습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도전과 노력은 결실을 맺어 국내 초고층 빌딩 최초로 에너지효율 1등급을 받았습니다. 아메리칸아키텍트닷컴(American-Architect.com) 선정 2015년 올해의 빌딩, 2014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부문 우수상, 2014 대한민국 녹색건축대전 우수상, 녹색건축인증 최우수상, 2015 Civic Trust Awards 국제건축부문 최우수상, 2014 Chicago AIA(미국건축가협회) 우수건축물상 등 수많은 상을 받은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1961년에 결성된 전경련은 1979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재를 털어 건물을 지을 때까지 변변한 집이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완공을 기념해 ‘창조, 협동, 번영’이라는 휘호석을 남겼지만, 준공식을 앞두고 운명을 달리하였습니다. 대기업 회장님들의 모임 장소 혹은 입주 기업들의 사무소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인연조차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움직임으로 이 땅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첨단의 건축이 들어섰습니다. 오늘날의 여의도를 바쁘게 오가는 시민들에게 거대한 돌에 새겨진 ‘창조, 협동, 번영’의 정신을 누가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도, 건물은 그 가치를 결과로서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글. 배윤경(건축가) 건축가 배윤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Berlage Institute)를 졸업했다. 현재 대학에서 건축 설계와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여러 미디어에 건축 관련 글을 쓰고 다양한 강의도 한다. 저서로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세계 건축 여행>,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 DDP 환유의 풍경>(공저), <가까스로 반짝이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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