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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건설] 아주 인문학적인 건축 탐방기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현대건설] 아주 인문학적인 건축 탐방기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DISCOVER [현대건설] 아주 인문학적인 건축 탐방기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HMG저널 2018. 7. 3. 13:39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본문 폰트 크기 조정 본문 폰트 크기 작게 보기 본문 폰트 크기 크게 보기 가 공유하기 URL복사 신고하기 피로에 지친 도시인들을 쉬게 하는 건물, 한남동의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입니다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을 보면 당장 그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집니다. 흔히 예상하는 관광 엽서 같은 풍경들이죠. 또 그렇게 하늘에 사는 정복자의 시선으로 도시를 호령하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며 전망대의 꼭대기로 오릅니다. 그렇지만 정작 대부분의 경험은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녀간 도시의 시각적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흐릿해지는 반면, 풍부하게 누적된 몸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아무리 탐사를 해도 현장에서의 첫인상을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를 타고 들어오는 공기, 피부에 닿는 햇살, 발바닥에 느껴지는 보행로의 감촉, 귀로 들어오는 생활 소음, 두 눈으로 볼 때만 지각 가능한 공간의 깊이와 비례. 바로 그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는 조건이 도시와 건축의 안타까운 한계이자, 동시에 여타의 가치를 넘어서는 매력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한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열심히 길을 걷는 일 외에는 달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길이 좋은 길일까요. 김수근 건축가는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차량을 우선으로 한 도시계획과 대비되는 인간적인 규모와 느릿한 움직임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사람은 단순한 보행 기계가 아니라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상이 필요한 셈이지요. 저는 김수근 건축가와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길의 면적에 여유가 있어 몸을 덜 피곤하게 하는 길, 과장 조금 보태 눈을 감고 걸어도 타인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밀도가 있는 길을 선호합니다. 튀어나온 보도블록이 발부리에 채이거나 볼라드(도로나 잔디에 자동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되는 장애물)가 지나치게 많아 피할 게 많은 길은 극도로 싫어합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가도 지친 몸을 잠시 쉴 수 있는 곳을 발견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아량에 고마울 따름이지요. 유달리 대중교통에서 자리싸움이 치열한 까닭도 길이 사람들의 피로를 적절히 받아주지 못하기 때문이겠습니다.  뮤직 라이브러리는 비를 피하게 하고, 약속장소로 쓰이며, 한남동 땅의 특이한 고저 차를 살린 매력적인 전망을 선사합니다 건축물이 없는 공원에서의 여유로운 시간도 좋지만, 빼곡한 건축물 사이에서도 잠깐의 멈춤이 절실합니다. 건물의 처마가 드리운 그림자의 품에 파고들거나, 열린 공간을 만나며 갑갑했던 시선이 트이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제법 안도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은 길과 건축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한 개인의 사적인 영토가 공공의 영역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친절과 배려가 읽힙니다. 한남동에 위치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존재가 위대한 까닭은 전 세계 방방곡곡 수소문해 희귀 LP를 수집했다거나, 롤링스톤즈에서 발행한 모든 잡지를 보유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 위대한 성취는 부동산 임대료가 해마다 치솟는 한남동이라는 지역에서 일부러 건축 면적을 채우지 않은 과감한 결단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철골로 세운 강직한 뼈대에 지붕을 얹고, 벽 일부만 채웠습니다. 그렇게 품은 거대한 보이드(void, 빈 공간)는 무엇인가를 담기 위해 비워져야 하는 사물들처럼 기능적인 없음이고,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비움입니다. 19세기의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는 건축의 필수 요소로 화로, 흙바닥, 지붕, 칸막이벽을 꼽았습니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기에 앞서 돈독한 유대를 가능케 하는 화로, 즉, 장소가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빈 공간은 사람들의 온기로 유지되는 화덕에 가깝습니다. 비를 피하게 하고, 약속장소로 쓰이며, 한남동 땅의 특이한 고저 차를 살린 매력적인 전망을 선사하기에 라이브러리 방문객이 아니더라도 항상 누군가의 기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외벽에 설치된 곤돌라에서 버스킹이 펼쳐질 때는 모닥불이 활활 타는 캠핑장에 온 기분이니 ‘무엇인가를 구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건축이 언제나 갈구하는 장소성을 획득했다는 아이러니’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입구를 슬며시 기울어진 바닥으로 구성한 디자인이 재미있습니다 보행로와 어떠한 경계도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건물의 바닥은 길의 연장입니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가 지어지기 전, 예식장이 있을 당시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 생긴 셈이지요. 이렇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중간 지대는 소중합니다. 네 것, 내 것을 칼같이 가르기보다는 그 상이한 성격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완충지대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엄연히 내 것이지만 그래도 네가 함께해도 좋겠다는 마음은 공생, 공존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길은 건축가의 의도에 따라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말하자면,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보지 않겠냐’는 정중한 호소입니다. 4층 규모의 높다란 지붕과, 지붕이 만드는 거대한 액자에 걸린 도시 풍경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바닥의 변화에 대해 눈치채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바닥은 입구를 향해 슬며시 기울어져서 경사를 갖고 내려갑니다. 혹시나 시에나 광장이나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가보신 분이라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겠습니다. 규모로 비교할 수 없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의도이고, 오히려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변화를 알아챘을 때 깨우침의 즐거움은 배가됩니다. 이 경사는 저 위 남산에서부터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리움 미술관에서의 경사를 따라 내려오는 동선이 비록 도로에 의해 한 번 끊어지지만 뮤직 라이브러리의 외부 바닥 경사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연속되면 좋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유리 자동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서도 그 경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남산의 역동적인 지세가 건물의 내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와도 길이 이어진다니 재밌는 구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커다란 창은 시원한 채광을 자랑합니다 건물의 또 다른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커다란 창입니다. 5m x 3m의 유리 11장으로 이루어진 입면은 본래 1/3 크기의 유리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프레임으로 인해 갑갑해 보여 완전히 다시 공사했다고 하니 그 역시도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건물에서 창이 갖는 의미가 상당했다는 얘기겠습니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반응도 있겠습니다만, 과거에도 위대한 근대 건축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창의 형태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는 정면의 가로로 긴 창이 특징입니다. 반면, 르 코르뷔지에의 스승이었던 오귀스트 페레는 창은 수직으로 길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창의 너비에 따라 세금을 매겼던 프랑스의 전통 때문에 세로로 긴 창이 자연스레 정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실제로는 창이 세로 방향이어야 땅부터 하늘까지 풍경을 전부 담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해 르 코르뷔지에는 수평 창이 수직 창에 비해 얼마나 자연광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지, 그 혜택을 근거로 듭니다. 물론 오래된 나무에서의 퀴퀴한 냄새, 몰딩 장식 밑에 쌓이는 먼지들, 어두운 실내가 건강에 좋지 않고, 결핵으로 수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자외선 살균이 되는 밝은 공간에 대한 신념은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의 커다란 창은 어떤 의미일까요.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공간의 폐쇄적인 성격을 중화시키며 이웃과 소통하는 창구의 의미도 있겠으나,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 중에 가장 시원한 채광을 자랑한다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빛의 영향을 받는 책을 둔 곳이 아니기에 이러한 반전을 꿈꿀 수 있었겠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과 바이닐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건물을 더욱 매력적이게 합니다 LP 혹은 바이닐은 음구를 파고든 바늘이 굴곡을 긁어 소리를 냅니다. 매 사용시마다 아주 조금씩 한정된 수명을 소진하지요. 디지털 매체가 삶의 대부분을 규정할 때 이러한 아날로그의 어수룩함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가장 선명한 음질이 아니라 오래된 진공관 앰프를 타고 흘러나오는 빈티지한 소리에서 그러하듯 말이죠. 또한 우리가 어떠한 절차에 따라 사물을 다룬다는 감각은 버튼이나 음성 하나로 작동하는 최신 전자기기와는 다른 관계를 쌓을 수 있게 해줍니다. ‘사물을 길들인다’는 태도가 요즘은 희귀한 인식인 것과 비슷합니다. 3D 프린터로 하루 만에 집을 뚝딱 출력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노동을 합니다. 건축 또한 LP와 마찬가지로 길들여야 하며, 유지관리를 통해 영속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러한 아날로그의 숙명은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다는 조건과 함께 건축을 매력적인 분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철골 구조체를 리벳(Rivet, 금속을 영구적으로 결합하는 데 사용되는 부품)으로 접합하지 않고 비틀림을 감수하고도 말끔하게 용접했다거나, 작은 나사의 모양까지 특별히 디자인하고, 외벽에 프린팅한 거대한 사진은 여러 장의 사진을 벽지 바르는 풀로 도배한 결과임을 확인할 때 ‘라이브러리’라는 정적인 어감이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에너지가 전해옵니다. 높은 층고와 밝은 실내는 근대에 등장한 공장의 미덕이었습니다. 실제로 검은색 철판과 아연도금강판과 같이 인더스트리얼적인 어휘로 마감한 실내는 이곳이 바이닐을 만드는 공장인가 싶은 착각도 일으킵니다.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품질을 테스트하는 것 같고요. 계단을 밟을 때 울리는 쇳소리마저 공간을 완성하는 하나의 연출 같습니다. 뮤직 라이브러리는 인사동의 쌈지길을 설계한 건축가 최문규가 설계했습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최문규의 작업을 외견상 유사한 특성으로 분류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전작인 인사동의 쌈짓길에서도 그러하듯 그의 건축은 어떠한 조건에 응답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그 조건은 시대와 장소, 향유하는 계층에 따라 다양한 입력값으로 나타나므로 언제나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설계 과정을 거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영화음악 같습니다. 감독의 의도, 배우의 감정, 씬의 호흡이 선행하고, 이렇게 앞선 조건들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창작을 한정하거나 음악을 배경으로 치부할 위험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엔니오 모리꼬네, <마지막 황제>의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위대한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은 언제나 영상에 단단히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이 커리어를 굳건히 유지하는 비결은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안내하는 단서가 이미 주위에 충분히 있다는 태도일 것입니다. 건축 또한 그렇습니다. 거꾸로 건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공간을 경험함으로써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을 읽거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글. 배윤경(건축가) 건축가 배윤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Berlage Institute)를 졸업했다. 현재 대학에서 건축 설계와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여러 미디어에 건축 관련 글을 쓰고 다양한 강의도 한다. 저서로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세계 건축 여행>,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 DDP 환유의 풍경>(공저), <가까스로 반짝이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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