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초, 현대자동차가 1967년도에 설립된 뒤 코티나를 조립생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오일쇼크와 함께 포드(Ford)와의 공동투자계획이 무산되어버린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었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1974년 정부는 장기 자동차공업 육성계획을 발표했지만 당시 원천기술이 없었던 현대자동차에게는 상당한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독자모델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게 된 시험이자, 지금의 현대자동차 올드카 포니 탄생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던 도박과도 같은 모험! 특히 현대자동차 회사 내에서의 반대가 컸었지만, 현대자동차 특유의 기업 정신인 과감한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비용과 타 메이커에서의 비아냥을 뒤로 한 채 노력한 결과, 독자모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아름다운 디자인에 좋은 성능까지 갖춘 자동차, 현대자동차 올드카 포니가 그 결과물입니다. 포니의 디자인은 이탈디자인(ITAL Design)의 수장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맡았습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폭스바겐과 알파로메오, 로터스, 포드 머스탱뿐만 아니라 니콘의 F4 카메라까지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인계의 거장입니다. 당시 돈으로 12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디자인료로 지불했었는데요. 그 결과 나온 포니의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당시 국제적인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에서 한 획을 그었습니다. 현대자동차 포니는 국내 최초의 독자모델이라는 자존감을 상승시키며 출시 첫해 10,726대나 판매되었습니다. 당시 중형차가 대부분이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무려 43%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소형차 시대를 열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올드카로 불리는 포니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외국 모델을 국내에서 조립생산 판매하는 생산방식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포니는 현대자동차 최초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독자 모델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 전 세계적으로는 16번째로 만들어졌던 고유 자동차 모델이었습니다. 개발 시작 1년 만인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이고, 1975년 12월 울산에 연간 120만 대의 생산규모를 갖춘 공장을 세운 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할 만큼 엄청난 추진력을 보였습니다.처음 현대자동차 포니를 접한 사람들은 해치백 스타일의 포니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타사 차량 대비 성능과 디자인이 뛰어났던 포니는 1976년 7월, 한국 최초로 에콰도르로 수출하는 동시에 국내 시장 점유율 60%를 기록하였습니다. 1982년에는 조금 더 동그란 이미지로 다듬어진 포니2가 히트를 치며 1984년 캐나다로 수출을 하였습니다. 이후 나온 후속 모델 엑셀이 북미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후 1990년에 단종이 되기까지 총 66만 1,500여 대가 판매된 모델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올드카 포니는 자식을 위해 열심히 뛰던 그 당시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자동차도 이렇게 단기간에 뛰어난 디자인과 성능의 자동차를 만든 적은 없었습니다. 1976년 포니 픽업, 1977년 포니 왜건, 1978년에는 배기량을 1,2ℓ에서 1,4ℓ로 높인 포니 1400, 1980년에는 쿠페 모델까지 다양한 모델을 선보였었습니다. 쉼 없이 가족들을 위해 달려온 아버지들처럼 현대자동차의 올드카 포니는 70~80년대 경제개발시대의 아이콘처럼 지내왔습니다. 다부진 외모처럼 뚝심 있게 시대의 모진 풍파를 이겨낸 포니는 대한민국 최초의 독자모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배짱 있는 현대자동차 도전정신의 영원한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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